저의 사회생활 첫 커리어는 웹디자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노트북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됐죠. 평소에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포토샵 다루는 걸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직업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회사는 전문 스포츠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였고, 당시 쇼핑몰의 규모도 상당히 컸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입점해 있었고, 저는 그 브랜드들을 돋보이게 하는 기획전, EDM, 사이트 전반에 대한 디자인을 하게 되었으니 적은 급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일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연차가 쌓이니 스포츠 쇼핑몰뿐 아니라, 외부 클라이언트들의 수주를 받아 브랜드 사이트들의 디자인도 하게 되었고, 회사가 따로 진행하고 있는 잡지 디자인 등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일이 디자인만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디자인보다 프론트엔드 코딩을 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했고, 당시 웹디자이너 = 디자인 +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퍼블리셔라는 직업군이 없었을 때니까요.

웹 표준이라는 개념이 있긴 했지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테이블로 코딩하는 게 업계에서도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디바이스가 나오게 된 후로는 모바일 웹사이트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나라도 테이블 코딩을 점차 지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저는 해당 타이밍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당연히 웹 쪽에 관심을 끊거나 하진 않았지만, 실무에서는 약 6~7년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일본어 학교 1.5년 + 수험 공부 1년 + 대학 4년.
대학 시절 수업 듣고, 과제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름 바쁘게 살았지만,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웹 쪽 뉴스를 기웃기웃거렸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2015년. 다시 잡은 직장은 웹과는 동떨어진 호텔이었습니다. 사실 호텔 디자인팀이 있어서 바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실무 경험을 쌓고 이동하기로 약속을 받고 호텔에 입사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호텔에서의 첫 보직은 프런트데스크.
아.. 그 수많은 일본 동기들을 모두 빼놓고 외국인인 나를 프런트데스크로 보낼 줄이야.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프런트에서의 경험은 너무나도 새롭고 즐거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고객을 대하는 법, 외국인 가이드와의 커뮤니케이션, 긴 밤을 버티는 법, 인수인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특히 고객을 대하는 법에 대해서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고객 우선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이기에 그 경험이 더욱 특별했습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며 프런트데스크 생활을 1년 정도 보낸 후, 다음 행선지는 도쿄 본사였습니다.
임원 비서로.

갑자기 생뚱맞게 임원 비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디자인실 or 임원 비서라는 선택지를 주셨습니다. 임원 비서라는 직업이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고민 끝에 겸해서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게 됐고, 당연히 임원 비서의 비중이 클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비서 생활. …
임원분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야 그분들의 스케줄과 경비, 모든 예약 등을 담당하게 됐지만, 그 일정을 소화하시는 임원분들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루에도 신칸센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스케줄을 소화하며, 회사 일에 신경을 쓰는 것과 동시에 대외 활동도 겸하고 있으니, 유명 연예인의 스케줄과 비교해도 빡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최대한 많이 따라다니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스케줄로 인해 주말이 없는 나날을 보냈지만 힘들다기보다는 즐거웠습니다. 젊은 나이기도 했고..

그렇게 1년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다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저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이 부분은 이야기하기 조금 곤란해서 생략하기로 합니다. (막 나쁜 일은 아니에요)

한국으로 돌아올 때 직장을 구하고 돌아온 게 아니라 6개월 가까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아서 면접을 봤던 곳이 아니라 헤드헌터로부터 제안이 들어온 회사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제조업 회사.
제조업 회사지만 팀은 EC(이커머스)이고, 이 회사는 EC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제작 벤더 관리를 하다가 기획 쪽 일을 하게 됐습니다. 웹기획, PM, 디자인/코딩 검수 등의 일을 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임했던 일은 문서 작업이었습니다. 일본계 회사인 만큼 엄청난 양의 문서 작업과 정형화된 포맷은 모든 프로세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개발 안건이 진행될 때마다 함께 병행했던 어마어마한 테스트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만큼 무엇을 하든 충분한 테스트 기간을 확보해서 꼼꼼하게 확인하는 게 기본이었고, 수많은 프로세스로 인한 코드의 복잡함은 덤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증에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 릴리스된 다음에는 발생하는 에러가 확실히 적었습니다. 거듭되는 경험으로 인해 프로세스와 환경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둥지를 이동하게 됐습니다.

처음 제게 디자이너의 길을 알게 해준 친구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엄청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직장 생활에 대해 힘든 일도 있지만 재미가 없진 않았거든요. 일본계 회사인 만큼 계속 일본어를 쓰게 되니 일본어 능력 저하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됐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제안받은 회사는 일본과는 무관한 회사이기도 하고, 포지션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긴 시간 고민을 하고 새로운 경험과 조금 더 좋은 근무 환경이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회사에서의 생활은 정말 좋았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새로운 업무, 잘 갖추어진 인프라 등등..
행복했던 1년 반의 시간.
그리고 악몽 같았던 반년의 시간.
처음으로 2년이 안 되는 시간을 채우고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하게 되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좋지 못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로 동료 둘과 함께 이직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회사는 디자인 디렉터로 입사를 했지만, 저보다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해오시던 분들이 계시기도 하고 해서 자연스럽게 웹 쪽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그리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진 않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제 앞날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아직도 생각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겪어온 사회생활 이야기였습니다. 군더더기 없이(상사, 동료, 환경, 급여 등) 쓰려고 했습니다만 잘 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스텝은 뭘 해야 할지 찾아보고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도 한몫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큽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자꾸만 부정적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게 돼서 걱정입니다. 아마 제 자신이 무언가에 조급함을 느끼고 있으니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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